지난 가족 휴가를 경주와 안동으로 다녀왔다. 특히 안동은 아예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안동에서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을 다녀왔는데, 특히 도산서원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 하고 가서.....ㅠ 뒤늦게 이동하는 차에서 도산서원과 퇴계 이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굉장히 흥미로운 일화들이 몇 가지 있어 블로그에 남겨보려고 한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이미지와는 달리, 정말 스윗한 부분이 많아 굉장히 재미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부부 생활
퇴계는 21살 때 동갑내기인 허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허씨는 둘째 아들(이채)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2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세상을 먼저 떠났지만, 이황은 장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아주 성심성의껏 모셨다고 한다.
부인이 죽고 3년상을 마치고 어느 날,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간 친구 권씨(권질)가 퇴계를 찾아온다. 권질에게는 정신이 혼미한 딸이 있었다. 권질의 가문은 두 번의 사화에 연루되어 풍비박산이 났는데, 어린 나이부터 이렇게 집안이 박살 나는 것을 보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신줄을 놓았던 것이다. 귀양을 가 있으니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권질은 이러한 딸이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그리고 퇴계 이황에게 말한다.
권질: "부인(허씨)의 3년상은 잘 치렀나? 재혼은 했는가?"
퇴계: "안 했습니다." (tmi: 권질은 퇴계 선생보다 18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존댓말로 써놨다.)
권질: "잘됐네. 내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 밖에는 내 딸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구먼. 비루한 아비의 간절한 소원이네. 내 딸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이러한 난감한 부탁에 퇴계는 한참 고민한 후 승낙했다. 이렇게 퇴계와 권씨 부인은 혼인을 치르게 되었다.
권씨 부인의 치마 속에 감춘 배
어느 날 조부의 제삿날 가족들이 큰집에 모였는데, 제사상에서 배 하나가 떨어졌다. 그걸 보고 권씨 부인은 배를 잽싸게 집어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눈치챈 형수가 권씨를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제사상에서 과일이 떨어진 것은 정성이 부족했다는 뜻이야! 그걸 치마 속에 감추면 어떡해?"
그러자 주변에서 손을 가리고 웃었다고 한다. 퇴계는 자초지종 이를 듣고, 권씨를 나무란 형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예법에는 어긋나는 일이나, 후손을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조상께서 손자며느리의 행동을 눈감아 주실 것입니다."
정중하게 사과한 후, 권씨 부인에게 배를 왜 숨겼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권씨 부인은, 배가 몹시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퇴계가 방긋 웃더니 감춰두었던 배를 손수 깎아 잘라 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집안사람들 모두 보고 있는데 말이다.
빨간 맛 도포 자락
하루는 퇴계 선생님이 문상에 가려고 도포를 입으려고 했다. 그런데 도포 자락이 닳아 헤져 있었고, 부인에게 꿰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자 권씨는 빨간색 헝겊을 가져다 기워주었다. 새하얀 상복에 빨간 헝겊이라,,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퇴계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대로 도포를 입고 상갓집에 갔다.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의아해하며 물었다.
"원래 흰 도포는 빨간 헝겊으로 기워야 하는 것입니까?"
이에 퇴계는 빙긋 웃기만 했다고 한다.
위 일화들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부인의 모자람을 묵묵하게 채워주었던 속 깊은 남편이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 시대 유교의 법도에 가장 정통한 퇴계 선생님의 일화는 충격적일 정도로 스윗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행동을 했다면 멋지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퇴계 선생님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의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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