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의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The Roses of Heliogabalus)> 라는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아름답고 정교하게 묘사된 무수한 장미꽃잎과 작품 속 인물들이 쓰고 있는 화관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꽃잎 더미에 파묻힌 사람들의 표정이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 작품은 아름답고 몽환적인 작품의 첫인상과는 상반되는 꽤나 기이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품에서는 고대 로마 황제인 엘라가발루스 (Elagabalus) (혹은 헬리오가발루스 (Heliogabalus))가 장미에 질식하여 죽어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이 그림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Historia Augusta)> 라는 고대 로마 황제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전기를 보고 작품의 화가인 알마 타데마 경이 상상력을 발휘해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23대 로마 황제였던 엘라가발루스는 악명 높은 폭군이었다. 괴팍한 행동, 너무나 과한 장난,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유흥을 즐겼다고 한다. 10대에 즉위해서 온갖 폭군 짓은 다 하고 결국 4년 만에 암살당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그의 에피소드 중 가장 괴랄한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다.
그는 연회의 손님들에게 꽃잎 뿌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 역시 황제의 명령에 따라 천장에서 꽃잎을 쏟아냈고, 꽃잎 속에 파묻혀 파티를 벌였다. 엘라가발루스 황제는 이 모습을 즐기며 계속해서 꽃잎을 퍼부었고, 너무 과한 나머지 몇 명이 질식해 죽었다.
작품의 위쪽에는 손님들에게 장미꽃잎을 투척하고 이를 누워서 구경하는 엘라가발루스가 보인다. (그렇다. 인물 중 상단 왼쪽에 누워있는 사람이 황제인가보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꽃잎에 질식사할 위기에 처한 손님들의 모습과는 달리,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표정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신선놀음 그잡채이다.
황제의 표정을 조금 더 자세히 보자. 보는 김에 실제 얼굴 복원도도 보자. 그림과 실제 얼굴의 싱크가 꽤나 높다.
특히 눈썹과 입술은 싱크가 100%에 수렴한다. 얼굴만 보면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할 것 같이 생기진 않았는데, 복원도를 보다 보니 눈이 너무 똘망한 게,, 양파쿵야와 같은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ㅋㅎ
작품과 실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헬리오가발루스는 제비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연회장에서 장미꽃이 아닌 이 제비꽃잎 + 기타 다른 꽃을 뿌렸다고 한다.
알마 타데마 경은 제비꽃을 장미꽃으로 바꾸어 작품에 담아냈는데, 썰에 따르면 당시 그가 활동하던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장미를 특히 좋아해서 취존의 목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썰이고, 실은 낭만, 아름다움을 품은 동시에 퇴폐, 향락, 치명적 유혹의 상징인 꽃이 장미이다. 게다가 이 그림이 그려진 빅토리아 시대에 장미는 욕망과 욕망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장미가 가진 대비야말로 작품의 광기(?)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이렇게 바꿨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알마 타데마 경은 이 작품을 위해 남프랑스에서 따뜻한 지중해 햇살을 받고 자란 장미를 4개월간 매주 런던으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실물을 직접 보며 꽃잎 하나하나 그려냈다. 아름다운 꽃 묘사의 배경에는 화가의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정도로 대영제국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그려진 이 작품.
강력한 영향력과 권력을 기반으로 번영하던 이 시기 빅토리아 왕조는 스스로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여겼다고 한다.
문명은 미개한 자에게 문명을 가져다주고, 무례한 자에게는 예의를, 부도덕한 자에게는 도덕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엘라가발루스 황제와 같은 함정을 반성했을 것이다.
꿈처럼 몽환적이고도 아름다운 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알고 나니 더욱 흥미롭다. 알아보며 정말 재미있었다.
오늘의 포스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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